
서력(西曆) 기원으로 21세기에 이른 세계사에 중요한 한 시기로 등장하는 바다의 실크로드(Silk Voyage)는 14세기에 시작되어 16세기까지 지속되었는데, 당(唐)나라 수도 서안(Xian)에서 당시 지중해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Venezia)까지 이어졌다. 범선(帆船)이 해상 교역으로 동서양을 연결했던 이 시기에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Malacca)와 인도대륙 서부의 구자라트(Gujarat)는 풍요로운 비단길의 중간 거점이었다. 그러므로 말라카 왕국과 바다의 실크로드의 전성기가 일치한다. 말라카 왕국의 전성기에 전 세계 80여 개 지역에서 무역 상인들이 몰려들었으므로 아마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을 것이다. 이곳을 통하여 인근의 향료군도 몰루카스(Moluccas)로부터 진기한 향신료(香辛料)가 베네치아로 운반되어 유럽시장으로 전해짐으로써 이제 막 중상주의(重商主義)에 눈을 뜨기 시작한 유럽 국가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이들은 동력선(動力船)을 발명을 서두르게 되었고, 유럽에 의한 식민통치시대가 개막되었다. 머지않아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향료무역을 독점하기 위한 유럽 열강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곧 최후의 승자가 되어 말라카 해협을 양분(兩分)하기에 이르렀다. 말레이 반도는 영국의 수중에 떨어졌고, 인도네시아 군도는 네덜란드의 차지가 되었다. 그 후 말레이 반도에는 다시 한 번 새로운 행운의 시대가 도래(到來)하였다. 양질의 주석(朱錫)과 고무가 생산되면서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남아 인근 지역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세계사에 등장한 말레이시아는 오늘날 국제사회의 모범국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를 구성하는 다민족사회는 현대국가를 지향하면서 종족 간의 갈등과 소요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같은 문화권에서 출발한 이웃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연방에 참여했다가 분리 독립한 싱가포르와도 편치 못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독자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기를 지나 협력과 화합을 통한 상생(相生)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는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