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마다 햄릿을 대하는 시대의 징후가 있다면, 우리들에게 햄릿은 무엇인가? 폭풍우 치는 광야에 광대와 함께 버려진 리어가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자신을 향해 하는 질문이 사실은 관객과 독자를 향한 절규이듯이, 절단이 난 시대의 관절을 꿰맞추거나 아니면 고통을 눌러 참고 절뚝거리며 시대와 동행해야 하는 우리는 모두 잡초가 무성한 어느 곳에 처한 햄릿들이다. 햄릿의 엘시노어 궁정을 찾아온 아동 극단 제 일배우의 낭송은 버질의 서사시 『이니어드』와 여기에 직접 빚지고 있는 크리스토퍼 말로의 비극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에 기초한 것이다. 트로이 몰락의 최후를 그린 아킬레스의 아들 피러스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배우의 낭송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실감나는 연기를 본 햄릿이 자문하듯이 “피러스에게 헤큐바가 무엇이란 말인가?”란 질문은 곧장 “우리에게 햄릿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는 세 가지 판본이 있다. 1603년에 출판된 <햄릿 제1사절판>과 1604년에 출판된 <햄릿 제2사절판>, 그리고 셰익스피어 사후인 1623년 36편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모은 첫 전집본인 <햄릿 제1이절판>. 국내에 소개된 대부분의 번역본이 '제1이절판'과 '제2사절판'을 다뤘기에 다른 판본들에 비해 다듬어지지 않은 원본 그대로를 다룬 <햄릿 제1사절판본>은 그 가치가 더욱 높다.
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한국외대 영어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박사
저서로 『셰익스피어와 바다』,『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수사적 인간』 외 다수.
역서로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어왕』, 『소네트』,『베니스의 상인』,『로미오와 줄리엣』 외 다수.